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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그리스(건축)

■ 신전

 

그리스 초기 신전은 사실 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후에 그리스가 번영하면서 우리가 아는 석조건축이 이루어진다. 

 

파르테논 신전, 기원전 448~432, 아테네

 

그리스의 대표적인 파르테논 신전은 기원전 447~438년 아테네의 중심부 언덕 아크로폴리스의 가장 전망좋은 곳에 지어졌다. 파르테논 신전은 두 차례의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 후 그리스 연맹을 주도하던 아테네가 정치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건설 되었는데 당시 유명했던 건축가 익티노스와 조각가 페이디아스가 주축이 되어 진행했다. 

파르테논 신전의 중요한 특징으로 일컫는 것 중의 하나는 기둥의 엔타시스다. 신전의 원기둥은 멀리서 바라보면 착시로 인해 중앙부분이 홀쭉해 보인다. 이 홀쭉함이 신전의 안정감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파르테논은 기둥하단의 3/1 지점을 살짝 두툼하게 만들어 멀리서 신전을 바라보았을 때 안정적인 형태를 갖게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배흘림이라는 같은 형태의 기둥이 있다. 가장 최초 기록으로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건축도에서 발견되었으며 현재 남아있는 건축물에서도 찾을 수 있다.) 

파르테논 신전은 대표적인 그리스 고전기 신전이다. 초창기 도리아식 신전이 가지는 육중한 기둥이 살짝 얇아지고 전체 높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던 엔타블러처의 비율 역시 다소 줄었지만 이 덕분에 오히려 안정적이어 보인다. 파르테논 신전의 아름다움의 근거를 비율에서 찾기도 하였는데 학자들은 이를 황금 비율이라 규범화 하기도 했다.

 

파르테논 신전 동쪽 박공, 영국 대영박물관

 

 파르테논의 엔타블러처 내에 새겨진 부조들 역시 유명하다. 여신 아테네를 위한 신전인 만큼 그와 관련된 이야기로 가득하다. 

가장 넓은 부분인 삼각형 형태의 앞,뒤 박공에는 도시 아테네를 두고 포세이돈과 경쟁하는 모습과 여신 아테네의 탄생 장면이 조각되었다. 박공 외에도 평평한 면이라면 반인반수의 적들과 싸우는 아테네와 영웅들의 모습들이 가득 조각되었다. 아테네의 가장 번영한 시기에 도시를 지켜주는 여신에게 봉헌하는 신전인 만큼 최고의 건축가와 조각가가 최고의 솜씨를 발휘했다. 후에 그리스가 힘을 잃어 식민지가 되었을 때도 파르테논은 꾸준히 기독교와 이슬람의 예배당으로 사용된다. 

아쉽게도 신전은 긴 세월 동안 전쟁에 휩쓸리며 부분적으로 파괴되었고 신전을 화려하게 만들었던 채색은 날라갔다. 그리고 신전 면을 가득 채우는 부조들을 실재 파르테논 신전에서는 볼 수 없다. 신전 혹은 아테네 박물관에 있는 조각들은 복제품이며 진품은 대부분 저멀리 바다건너 영국의 대영박물관에서 소장되어 있다. 그리스가 주권을 찾은 후 1934년부터 복원이 진행 중이지만 과거의 형태를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테나 파르테노스, 복제품, 미국 내슈빌

 파르테논 신전 내부에는 페이디아스가 제작한 아테네 여신상이 있었다. 오른손엔 승리의 신 니케를 들고 다른 손엔 메두사의 머리가 박힌 방패와 창을 들고 있는 형태다. 전체 높이가 12m에 달하는 거대한 신상이었으며 상아로 표현한 피부 외에 대부분이 금이었다. 사용된 금만 1.144kg이다고 한다. 자연광을 받고 우뚝 서 있는 12m의 금빛 여신상은 매우 장엄하고 화려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전부 복제품이며 원본은 소실 되었다.

 

 

파르테논 외에도 도리아식으로 지어진 신전에는 제우스 신전, 포세이돈 신전, 헤라 신전이 있다. 제우스 신전은 올림피아 신전이라고도 불리며 내부에 페이디아스가 조각한 12m의 거대하고 웅장한 제우스 좌상이 있었다 현재는 소실 되어 그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 했지만 아테네 여신상 못지않게 화려했으며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언급될 만큼 대단했다고 한다.

 

도리스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 건축양식

 

 그리스 북쪽 지역에서 온 도리스 인들의 건축양식이 주를 이루다가 소아시아와 에게해 연안의 이오니아족에서 만들어진 건축양식이 유행하게 된다. 이오니아 인들은 도리아인에게 밀려 현재 터키와 그리스의 일부분에 정착하게 되는데 이곳은 페르시아와 맞닿는 국경도시였다. 따라서 동방제국과의 교류가 쉬었으며 그리스 본토보다 경제적, 정치적으로 선행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페르시아에 정복당했다가 이오니아 인들이 봉기하면서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쟁의 원인이 된다. 

 

에렉테이움 신전, 기원전 420~405, 아테네

 이오니아 건축은 날씬한 기둥에 상단에 소용돌이의 장식이 있다. 이로 인해 전체적으로 경쾌하고 여성적인 느낌을 준다.  대표적으로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에렉테이온 신전이 있는데 이 신전은 특이하게 아테네, 제우스, 포세이돈 같은 여러 신을 모시는 신전이었다. 게다가 직사각형의 대칭형태가 아닌 여러 사각형의 방이 연결된 형태로 내부의 높낮이도 다르다. 심지어 에렉테이온 신전의 튀어나와 있는 공간의 기둥 역할은 신전 밖을 바라보는 여인상이 대신하고 있다. 그 건축 기술의 수준이 높고 아름다워 파르테논이 도리아식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라면, 에렉테이움은 이오니아식의 대표 건축물로 일컬어지고 있다. 이와 같이 이오니아식 신전은 기둥 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장식과 양식이 보다 정교하고 다듬어진 형태를 보여준다. 도리아 식이 웅장하고 위엄있는 형태라면 이오니아식은 한없이 우아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오니아식의 신전 으로는 에렉테이움 신전 외에 아테나 니케신전, 이오니아의 식민지였던 소아시아에 지어진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다. 아크로 폴리스에 세워진 아테네 니케 신전은 작지만 페르시아와의 전쟁 승리 후 지어진 신전들 중에 하나로 기념비적인 장소다. 

 

콜로세움, 기원후 70~80, 로마

그리스의 마지막 건축 양식 코린트는 화려한 잎사귀로 장식된 장식적인 기둥 머리를 가지고 있다. 만든 민족의 이름을 딴 건축양식과 달리 코린트 이름은 지역명을 따왔으며 코린트 지역의 아칸투스을 보고 만들어졌다고 한다. 기둥 머리 부분을 제외하고는 이오니아 식 기둥과 유사하다. 

헬레니즘 시기에 해당하는 기원전 4세기에 만들어졌다. 초반에는 그리스의 전통이라 여기던 도리아식과 이오니아식의 사이에서 힘을 못쓰고 신전 실내에서만 사용되다가 기원전 170년경이 되어서야 외부 기둥으로 쓰이게 된다. 코린트식 건축 양식은 그리스 본토 뿐만이 아니라 로마와 소아시아에서도 발견된다. 헬레니즘 시기 이미 그리스인의 건축과 미술은 유명했으며 그리스인 화가와 조각가들은 그리스 밖의 주변국에서도 활동했다. 당시 부흥하던 로마에서도 그리스 작품에 대한 수요는 당연했으며 아름답고 화려한 이오니아식과 코린트 식의 기둥이 적극 받아들여졌다.  

코린트 양식의 건축물로는 로마의 판테온, 콜로세움이 있다.

 

콜로세움의 경우 1,2,3층 각각의 기둥이 도리스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이 사용되어 각 양식을 한번에 비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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