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각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은 지금과 의미가 다소 다르다. 현재 우리는 과거의 아름다운 유물로서 고대인들의 뛰어난 조각 실력에 감탄하며 때로는 그 아름다운 미술작품들의 재료와 비례, 기술을 연구하고 또는 모방하고자 하는 미적인 대상이지만 고대인들에게 신전과 조각상은 인간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힘과 기적을 가진 신을 위한 봉헌물이었다. 그렇기에 매우 신성한 장소이자 대상이었다. 과거 그리스 인들은 그리스 전역에 세워진 신전에 찾아가 신의 이름을 부르며 소원을 빌고 재물을 바쳐 그리스의 행복과 승리를 염원 했을 것이다. 그리스가 번영할 수록 그리스 인들은 감사의 의미를 담아 각지에 더욱 화려하고 거대하게 신전을 짓고 신의 모습을 담으려 했다. 지금은 그 조각과 기둥을 떼어다 먼 바다 건너 외국의 박물관과 미술관에 보관하고 있으니 사실 따지고 보면 매우 불경한 형태다.
우리가 고대 그리스인들의 미술을 정확하게 이해하고자 한다면 조각과 신전의 원래 위치와 역할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 미술은 이집트와 아시리아 등 고대 왕국의 것을 바탕으로 시작한다. 기원전 7세기 것으로 발견된 <만티클로스 아폴론>청동상과 기원전 6세기 <뉴욕 쿠로소>를 보면 100년간의 시간 흐름이 보이지만 둘 다 이집트 파라오 조각상을 보는 듯 그 특유의 경직된 인체의 선이 느껴진다. 게다가 만티클로스의 아폴론의 경우 얼굴, 상체, 하체의 비율이 1:1:1이어서 매우 기괴한 느낌을 준다. 이후 기원전 530년의 <아나비소스 쿠로스> 그리고 20년 뒤의 <피레우스의 아폴론>을 보면 급격한 변화를 느낄수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과거의 지식만을 의지하지 않고 끊임없이 그들의 눈으로 관찰한 결과이다. 인체의 비율이 훨씬 사실적이어졌으며, 발과 손의 개별적인 묘사 뿐만 아니라 인체의 근육선이 보인다. 전체적인 비율이 안정적이고 몸의 볼륨감 역시 훨씬 실감나게 느껴진다. 5세기에 들어서면 그리스인들은 더 이상 고대 제국의 법칙을 따르지 않고 그들만의 기술과 관찰로 훌륭한 조각상을 완성해 낸다. 당시 활발히 활동한 페이디아스의 실제 작품은 아쉽게도 문헌으로만 전해지고 있지만 그의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상 리아체와 로마에서 복제한 조각을 보고 당시 그의 조각 실력을 어림잡아 상상할 수 있다.
미론의 <원반 던지는 사람>은 동시대에 만들어졌다. 5세기 그리스 조각상들은 인체의 근육과 뼈의 관찰이 더없이 훌룡하게 표현 됬으며 8등신 비율과 여려 동작들로 인체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페이디아스는 아테네 파르테노스와 제우스 좌상으로 그리스 전역에 이름을 떨쳤다. 특히 그의 제우스 좌상은 그 모습이 너무 경의롭고 아름다워 비잔티움시대의 수학자 펠른에 의해 세계 7대 불가사의에 포함되기도 한다. 페이디아스와 미론 외의 그리스 조각가와 화가들은 부유한 그리스에서 수많은 작품들을 만들어 간다. 신전의 신상으로 존재하던 조각상은 종교를 벗어나 주요 정치인과 운동 경기의 우승자들과 같이 영웅으로 숭배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담게 된다. 사람들은 도시 전역에 있는 조각상과 그림에 대해 이야기 하고 토론하며 만든이를 궁금해 했다. 그렇게 점차 미술에 대한 관심을 넓어지기 시작한다.
페이디아스 이후 조각은 대중들의 관심 속에 더욱더 아름담고 섬세하게 제작된다. 이에 발 맞추어 건축에서는 이오니아식의 양식이 유행한다. 4세기에 들어서면서 조각은 완숙한 경지에 이르러 우리가 아는 유명한 걸작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등장한다. 당대 최고의 조각가로 언급되는 프락시텔레스의 작품을 보자. <헤르메스와 어린 디오니소스>와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를 보면 표현된 인체가 아름답고 우아하다. 5세기의 조각들이 그동안 관찰해온 인체의 모든 근육과 뼈를 적절한 위치에 담아내기 위해 표현했다면 4세기의 조각은 그 위에 적절한 양의 살을 붙여 인체의 선을 보다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다듬었다. 프렉시텔레스의 작품은 그리스 인체 조각의 가장 정점으로 이야기 된다.
그리스의 조각상과 같은 인체는 사실 실재로 존재하기는 어렵다. 완벽한 비율과 자세, 근육과 같은 것들은 수많은 모델들을 관찰하여 얻어낸 이상적인 신체의 집합체 이다. 이 예로 미론의 <원반 던지는 사람>은 실제 원반 던지는 자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과거 운동하던 이들이 그 자세를 교본이라 여겨 연구했지만 결국 인체의 운동성을 극대화 시켜 연출하기 위한 최적의 자세였을 뿐 원반을 던지는데는 쓸모없는 것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스 조각가들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보다 그것을 다듬어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데 주력한 것으로 보인다.
고대 아테나 도시엔 남성 조각상이 즐비했다고 한다. 판아테나이아 같은 행사에서 치루는 운동경기 우승자는 신의 권능을 받은 자라며 조각했고 정치적으로 유명하거나 훌륭한 사람들 역시 조각해 아고라 혹은 신전 주변에 배치했다. 그리스에서 시민은 남성만 해당 됬고 시민만이 국가 행사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신전에 모신 여신을 제외한 도시의 조각상들은 전부 남성상이다. 물론 외국인과 노예를 제외하고서도 모든 남성이 같은 대우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직업에 따라 일반 시민과 엘리트 계층이 나누어졌고 엘리트 계층은 그리스의 정치와 경제, 문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당연하게도 조각될 국가의 영웅은 남성밖에 존재할 수 없었다. 남성상의 경우 거의 모든 상이 나체로 표현됬는데 고대 그리스에서는 젊은 남성의 균형잡힌 신체를 아름답게 여겼다. 아름다운 신체는 엘리트 계층의 덕목이었고 나체는 그들의 하나의 의상과 같았다. 때문에 국가의 주요 행사에는 항상 운동경기가 있었으며, 그리스의 가장 중요했던 교육기관은 운동을 배우는 김나지온이었다. 김나지온의 원래 의미는 ‘나체로 다니는 장소’이다. 반면에 여성 조각상은 옷을 입혀 제작하였고 또한 필요에 의해 제작되었다. 기원전 530년에 제작된 <페플로스를 입은 코레>는 다음과 같은 문장과 함께 발견되었는데 읽어보면 고대 그리스 시대의 여성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니칸드레가 나를 활 잘 쏘는 궁수, 즉 아르테미스에게 바쳤다. 그녀(니칸드레)는 낙소스인의 네이노디케스의 딸이자 데이노메네스의 누이이며, 지금은 프락소스의 아내이다.”
라고 적혀있다. 이 여성 입상은 신에게 바쳐지는 봉헌물이며 대상과 관련된 남성들을 언급하여 봉현물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설명하고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4세기 프락시텔레스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의 등장은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프릭시텔레스는 옷을 입은 아프로디테와 옷을 벗은 아프로디테를 한 점 씩 만들어 같은 가격에 판매하였다. 당연하게도 옷을 입은 아프로디테가 ‘격식 있고 정숙하기 때문에’ 먼저 선택을 받았고 남은 아프로디테는 어쩔 수 없이 크니도스인들에게 갔다. 하지만 크니도스 인들은 유명한 프락시텔레스의 조각상을 모시기 위해 원형의 신전을 만들어 가운데 옷을 벗은 아프로디테를 모셨고 이후 이 새롭고 놀라운 아프로디테는 어마어마한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는 여성의 음부를 가리는 형태로 제작되었는데 남성 조각상과 다르게 다소 부끄러워하는 듯하게 웅크린 자세를 취한다. 서양미술사에서는 이를 두고 여성의 몸을 ‘남성적 응시’의 대상을 삼은 오랜 서양미술사 관행의 첫 단추로 본다.
아쉽게도 지금 까지 전해 지고 있는 고대 그리스 조각은 대부분 로마에서 그들의 도시를 장식하기 위해 따라 만든 복제품들이다. 당시 그리스산 조각상은 대부분 청동으로 제작 되어 일부분 금을 장식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중세 이후 금속이 부족해지자 녹여 사용 하였고, 발견하지 못한 신상들은 오랜시간 전쟁과 자연재해 속에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의견으로는 과거 기독교의 교리에 따라 훼손되었다고도 주장한다. 로마가 교회를 국교로 승인한 이후 교회의 힘은 꾸준히 커졌고, 그리스 신전에 모셔진 신상을 포함하여 전 세계에 존재했던 각 국가와 문화 속의 신상들은 그들이 혐오하는 이도교의 상징이자 우상숭배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이도교의 신상을 파괴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에게는 신성한 의무였다.
로마인들은 그들의 부유하고 번영한 도시를 꾸미기 위해 유명한 그리스 인의 그림과 조각을 가져와 장식하고 때로는 모방하며 직접 조각가와 화가들에게 의뢰하였다. 재미있게도 그들이 정원과 목욕탕을 장식하기 위해 혹은 관광객에게 팔았던 여행상품들 덕분에 고대 그리스의 문화를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실제 작품과 차이가 있겠지만 로마의 대리석 복제품이 없었다면 우리는 기록된 문헌에 부족한 상상력을 입히고 있었을 것이다.
로마에서는 청동이 아닌 대리석으로 복제하였는데 청동에 비해 대리석은 무게가 상당하여 자유롭게 자세를 유지할 수 없었다. 로마인들은 인물 일부분에 잘린 나무 기둥을 추가하는 것으로 해결을 보았다. 그래서 <참주 살해자들>, <원반 던지는 사람>,<창을 들고가는 사람>등 로마 복제품의 경우 인물 뒷편에 같은 대리석으로 조각된 나무기둥이 추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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